학교를 향한 언론의 비판 가운데 굉장히 자주 등장하는 표현 중 하나가 보수적인 교사들로 인해 학교가 변화에 굉장히 느리다는 것이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는 근대교육을 재판한다는 자극적인 제목의 영상이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이 영상을 보면서 나 역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특히 주인공이 스케치북에 과거와 현대 교육 현장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변화나 트렌드에 민감한 기술교육을 전공했기 때문일까. 나 역시 적극적으로 변화에 동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변화하지 않는 교사들을 욕하고 싶진 않다.
2002년 초여름쯤이었던 것 같다. 사춘기와 복잡한 가정사가 겹치면서 내 내면에는 항상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그렇게 고등학교 1학년 학교 생활을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을 때 나는 우리 학교에서 천사로 불리던 선생님의 입에서 처음으로 씨x이라는 욕설을 들었다. 체벌이 너무 당연하던 시기였기에 사실 교사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튀어 나온 것이 그렇게 충격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하지만 그 다음 그 선생님의 한 마디가 내 인생을 바꾼 계기가 되었다.
나도 욕을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야.
다만 내가 너희에게 욕을 하면
너희 스스로가 욕을 먹어도 되는 그런
하찮은 존재로 여길까봐 그게 걱정돼
그래서 욕을 안하려 노력하는 거야
실제 그날 이후로 선생님은 우리에게 다시는 욕을 하지 않으셨다. ‘자존감’이나 ‘자기애’가 인생에 얼마나 중요한 지는 굳이 강조하지 않더라도 모두 알 수 있을 것이다. 남자 어른이 나에게 처음으로 “너는 소중한 사람이야”라고 말한 그날 이후 매사에 부정적이고 내 존재의 이유를 부정하던 나는 조금씩 바뀌어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정 반대의 선생님을 만나게 됐다.
2003년 3월 2일, 첫 담임 선생님과 마주하는 개학 첫날. 1교시를 알리는 종이 울리자 우리는 모두 숨을 죽였다. 어떤 담임 교사를 만나는가에 따라 1년을 힘들게 지낼 것이냐 아니면 편하게 지낼 것이냐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곧 선생님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학생들 사이에서 공포의 대상이었던 음악 선생님이 앞문에 멈춰섯다. 우리는 속으로 제발!!이라 기도하기 시작했고 그 기도가 효과가 있었는지 선생님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 아직도 기억난다. 우리는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어떤 친구는 예쓰!!! 이렇게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그 선생님이 뒷문으로 들어오기 전까지는.
고2 담임선생님은 모든 일에 대충대충이 없었다. 3월 한 달은 종례가 끝나고 매일 청소를 한 시간씩 했고 시험기간이면 다른 과목은 몰라도 음악은 모두 열심히 공부했다. 왜냐면 100점 이하로는 1점 당 한대 씩 맞았기 때문이다. 공고가 어떤 곳인지 아는 사람은 이게 얼마나 말도 안되는 소린지 잘 알 것이다. 학생 대부분이 시험지가 나오기도 전에 답안지에 마킹을 끝내는 곳에서 80점이나 90점도 아니고 100이라니. 그 당시 우리반에 힘 꽤나 쓰던 복학생 형이 있었는데 그 형조차도 전교 1등이었던 나를 시험기간에는 매일 집으로 불러 과외를 부탁(사실 협박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하다)했으니 학생들이 느끼는 시험의 부담감이 얼마나 중했는지 잘 알 수 있다. 올해 같은 학교에서 그 선생님과 근무하게 되면서 하루는 내가 그때 좀 너무하신 거 아니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선생님은 그런 적이 있었냐며 웃으며 이런 말씀을 하셨다.
공부하기 싫어 공고왔는데 무슨 공부야
지금까지 그랬듯 어차피 해도 안 될 거야
이 정도면 됐어. 충분해
전공과목만 잘하면 되는 거 아냐?
선생님은 학생들의 이런 태도가 맘에 안 드셨다고 한다. 그래서 노력만 한다면 누구든지, 그 어떤 일이라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가르치고 싶었다는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자신감은 있었지만 뭔가 아직 정리되지 않고 자유로움을 자신감이라고 생각하며 살던 내가 고2 이후 차분해지고 성숙해진 것 같다. 이처럼 물과 기름처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성격의 두 선생님은 그 형태는 다르지만 분명 나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다.
졸업 후 15년이 지나 다시 찾아온 학교의 모습은 많이 바뀌어 있었다. 잘못을 저지른 학생에게 이제 어떤 교사도 욕이나 체벌을 하지 않는다. 그 대신 벌점을 주고 징계를 내린다. 잘못을 바로잡고 올바로 변화할 수 있는 기회는 사라지고 교내 봉사, 강제 전학, 자퇴라는 처벌만이 남았다. 과정형 평가제도를 도입해 학생들의 변화 과정을 평가하라고 말하면서 정작 변화할 기회는 주지 않는다. 교사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는 시대가 변했으니 거기에 적응해야 한다고만 말할뿐 학생의 변화를 진심으로 바라는 교사들의 진심을 오히려 잘못됐다 말하고 있다.
비록 그 속도는 느리더라도 사람은 누구나 논리적으로 설득한다면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나는 이 사실을 100% 확신하기 때문에 교육학이라는 학문을 전공했고 이 학문을 사랑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체벌 그 자체를 학생의 인권과 정반대의 개념으로 보진 않는다. 굉장히 아이러니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체벌에 찬성하진 않지만 동시에 체벌을 반대하진 않는다. 분명 자신의 분을 풀기 위해 체벌하는 교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학생의 바람직한 변화를 위해 자신이 다칠 것임을 알지만 행동발달주의적인 교육관으로 학생을 체벌하는 교사도 있을 것이다. 내 말은 적어도 이러한 교사의 진심은 우리가 공감해주고 지지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TVN의 인기 드라마인 스타트업에서는 남도산이라는 주인공의 인생역전 이야기가 그려진다. 그리고 주인공의 아버지인 남성환이 인공지능 기술로 인해 일자리를 잃게되자 관계자를 찾아가 자신과 같은 일반인들이 덜 다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달라고 말한다. 현재 4차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며 기술과 사회의 변화는 쉽게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청동기를 철기가 무너트리고 원주민을 이주민들이 쫓아낸 인류의 역사가 반복되면서 변화에 적응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밀어내고 있다.
학생이 중심이 되는 학교. 학생 주도적인 수업과 교수방법론 등의 트렌드 앞에서 많은 교사들이 다양한 이유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이런 교사들을 향해 ‘방학을 이용해 연수를 듣고 자기개발을 해라’라고 말하는 것은 별로 효과적이지 않다. 그보다는 이들에게 서서히 변화에 적응해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그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그래서 나 스스로가 먼저 챗봇을 수업에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연구해 특성화고 연구대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이제 구시대적인 학교나 교사가 학생들의 성장을 방해한다는 비난을 멈춰야 한다. 특정 교사의 교육철학이 나의 생각이나 트렌드에 맞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일을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 특정한 감정만을 느끼고 특정 생각만을 하는 사람을 우리는 사이코패스라고 부른다. 우리 학생들이 이런 사이코패스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다양한 것들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며 그것이 보수적인 학교를 향해 비난을 멈춰야 하는 이유이다.